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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cm X 92cm

 

자()는 운장()이며, 원래의 자()는 장생()이다. 시호()는 장목후()이며, 수염이 아름다워 미염공()이라고도 불렸다. 죽은 뒤 민간 숭배의 대상이 되어 ‘관성제군()’이나 ‘관제성군()’이라고도 불리며,간단히 ‘관제군()’, ‘관제()’라고도 한다.

 지금의 산시성[西] 윈청시[]인 하동군() 해현() 출신으로, 이 곳은 중국 최대의 염호(塩)인 해지() 부근으로, 소금 생산지로 유명했던 곳이다.

한()에서는 소금이 국가 전매품이어서 밀매가 성행했는데, 관우도 소금 밀매에 관여하다가 폭리를 취하는 염상(塩)을 죽이고 유주()로 도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과정에서 성과 이름도 바꾸어 관우()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관우()는 후한말()의 동란기에 탁현(, 소재)에서 유비()를 만나, 장비()와 함께 의형제를 맺고, 평생 그 의를 저버리지 않았다. 200년에 유비가 조조()에게 패하였을 때, 관우는 사로잡혀 조조의 귀순 종용과 함께 예우를 극진히 받았다.

이에 관우는 조조의 대적() 원소()의 부하 안량()을 베어 조조의 후대에 보답한 다음, 기어이 유비에게로 돌아갔다.

208년 적벽전() 때에는 수군()을 인솔하여 큰 공을 세우고, 유비의 익주(:) 공략 때는 형주(:)에 머물러, 촉나라의 동방방위를 맡는 등 그 무력과 위풍()은 조조와 손권()마저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형주에서 촉나라 세력의 확립을 위하여 진력하다가 조조와 손권의 협격()을 받아, 마침내 사로잡혀 죽음을 당하였다.

관우는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충신의 전형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송() 이후로 관제묘()를 세워 그를 무신() 또는 재신()으로 모시는 등 중국 민중의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불교에서도 그를 호법신()의 하나로 받아들여 ‘가람보살()’로 숭배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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